[2022.02] 한식의 ‘New Normal’...봉골레 칼국수·봇밥·맡김차림 '한식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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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16일 오후 2시 강남역 인근 2층에 위치한 ‘봇밥’. ‘한식 패스트푸드 로봇주방’이라는 간판이 크게 걸려 있다. 들어가보니 매장 한가운데 ‘바비’라 이름 붙은 로봇 팔이 각종 찌개를 끓이고 있다. 인덕션에 올린 후 정확히 3분 30초 만에 로봇 팔이 옮기니 균일한 맛과 빠른 서빙이 가능하다고. 키오스크와 로봇 팔 덕분에 53평 넓은 매장에서도 직원은 2명뿐이다. 가성비가 입소문을 타며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여파로 외식업이 한파를 맞은 요즘도 일평균 100만원 안팎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오는 3월에는 볶음 요리도 하는 로봇을 도입한 봇밥 2호점 오픈을 준비 중이다.


봇밥의 한 직원은 “대형 식당에는 타지 않도록 화구 앞에서 탕만 끓이는 ‘탕부’가 따로 있다. 바비가 이를 대신해주니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흡족해했다. 김용 봇밥 대표는 “내가 주방에서 일해보니 좁고 덥고 힘들더라. 한식은 특히 손이 많이 가는데도 수익성이 낮은 어려운 음식이다. 한식도 로봇으로 조리를 자동화하면 근무 강도를 낮추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식이 달라졌다. 정갈한 차림상과 손맛 대신 빠르고 간편한 ‘패스트 캐주얼’이 대세다. 1인 가구 증가로 요리가 외주화되며 ‘집밥’ 대신 외식의 한 메뉴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식 식재료에 외국식 조리법을 접목한 퓨전 한식과 한식 메뉴 전문점도 인기다. 최근 외식 업계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한식 뉴트렌드를 살펴본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식 패스트푸드 로봇주방 ‘봇밥’ 전경(위)과 봇밥에서 로봇 ‘바비’가 조리하는 모습(아래). (노승욱 기자)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식 패스트푸드 로봇주방 ‘봇밥’ 전경(위)과 봇밥에서 로봇 ‘바비’가 조리하는 모습(아래). (노승욱 기자)



▶프랜차이즈 다크호스 된 한식


▷1인 가구 시대에 외식 아이템 정착


“한식은 똘똘한 프랜차이즈가 없다.”


그간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회자된 얘기다. 한식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집에서 요리할 수 있으니 진입장벽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냄새나 조리 시간 문제로 집에서 해 먹기 번거로운 삼겹살, 순대국밥 정도만 잘나갔을 뿐이다.


요즘은 달라졌다. 가맹점 수백 개를 거느린 똘똘한 한식 프랜차이즈가 적잖다.


최근 가맹점 200개를 돌파한 ‘백채김치찌개’가 대표 사례다. 2013년에 문을 연 백채김치찌개는 2010년대 후반 들어 가맹점이 급증했다. 1인 가구가 늘며 집밥 대신 한식도 사 먹는, ‘한식의 외식화’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박병진 백채김치찌개 대표는 “우리의 모토는 ‘김치찌개는 집에서 해 먹는 것이 아닌, 사 먹는 음식’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한동안 출점이 정체됐지만 최근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가맹점을 2개 이상 운영하는 다점포율도 27%에 달한다. 배달 비중은 10~20% 정도다. 여세를 몰아 ‘서울떡갈비(떡갈비)’ ‘우이락(전 요리)’ 등 다른 한식 메뉴도 프랜차이즈로 선보였는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K푸드 선봉 ‘모던 퓨전 한식’


▷한중일 접목한 ‘코자차’ 1스타 등극


그간 ‘모던 퓨전 한식’은 파인다이닝 업계를 중심으로 시도됐다. 다소 ‘뻔한’ 한식 본연의 맛 대신, 한식 식재료를 활용하면서도 현대적인 서양식 조리법에 미식가를 위한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는 데 몰두했다. 그런데 요즘은 퓨전 한식이 배달전문식당이나 편의점에서 판매할 정도로 대중화됐다.


지난해 외식 업계를 강타한 ‘로제 열풍’이 대표 사례다. 로제 파스타 등 양식 요리에 주로 쓰이던 로제 소스가 한식에 접목되며 로제 떡볶이, 로제 찜닭, 로제 갈비찜 등이 인기 레시피로 떠올랐다. 파스타면 대신 당면을 넣어 로제 떡볶이당면 파스타로 ‘커스텀(개인 맞춤)’해 먹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GS25는 지난 1월 압구정 퓨전 한식 맛집 ‘호족반’과 협업해 ‘봉골레 칼국수’‘트러플 감자 베이컨 주먹밥’ 등 신메뉴 4종을 선보였다. 이 밖에도 ‘짬뽕순두부’ ‘된장 파스타’ 등 한식 식재료와 외국식 조리법을 접목한 퓨전 메뉴 인기가 이어진다. ‘한우 오마카세(맡김차림)’에 이어 ‘한식 오마카세’를 선보이는 한식 다이닝바도 늘고 있다.


퓨전 한식은 파인다이닝 업계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테마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미쉐린가이드 2022’에서는 한식, 일식, 중식을 퓨전한 원테이블 파인다이닝 식당 ‘코자차’가 새롭게 원스타(별 1개) 식당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소주, 막걸리 등 전통주 대신 한식을 와인과 곁들이는 ‘한식 와인 다이닝바’도 주목받는다. 도산공원의 ‘미아전’ ‘어물전 청’ ‘목탄장’, 압구정의 ‘도슬박’ ‘화빙장’ ‘작정’ ‘안주방’ 등이 대표 사례다.


“기존의 ‘한식’이 한정식 또는 전통적인 한식 ‘식사’ 요리가 중심이었다면, 요즘은 한식을 기본으로 일식, 이탈리안, 프렌치와 더해진 ‘한식 컨템퍼러리’ 형식의 다이닝 식당이 늘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한식의 인기에 더해, 콜드체인 유통 발달로 좋은 식재료를 더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환경, 자개나 도기 등 한국적 식기의 유려함 등을 통해 셰프의 음식 철학을 손님이 더 이해하기 용이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한식 파인다이닝이 미쉐린가이드 별을 획득하면서 최근 한식 파인다이닝 개업이 많아진 것도 저변 확대에 일조하고 있다.”


안병익 식신 대표의 분석이다.


퓨전 한식은 한식 세계화를 위해서도 중요한 주제다. LA에서 한식당 ‘한음’과 한국식 주점 ‘강셰프 술박스’를 운영 중인 강원석 사장은 한식도 현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조금씩 친숙해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김치의 매운맛에 익숙지 않은 미국인이 많다. 이들에게 한국의 비빔밥 등을 그대로 내미는 것은 한국인 중심 사고방식이다. ‘미국식 중식’으로 성공한 판다익스프레스처럼, 한식도 미국인의 입맛에 맞게 적절히 퓨전을 가미할 필요가 있다.”


미국 LA의 퓨전 한식당 ‘한식(HanChic)’의 인기 메뉴 ‘돼지덮밥(위)’. 유가네닭갈비가 가맹점에 도입 중인 자동 조리기 ‘오토웍(아래)’. (한식 인스타그램, 유가네닭갈비 제공)

미국 LA의 퓨전 한식당 ‘한식(HanChic)’의 인기 메뉴 ‘돼지덮밥(위)’. 유가네닭갈비가 가맹점에 도입 중인 자동 조리기 ‘오토웍(아래)’. (한식 인스타그램, 유가네닭갈비 제공)



▶한식 전문점화


▷뷔페 대신 미역국·곱창 ‘한 가지만’


한식의 전문점화도 눈에 띈다. 한때 외식 업계에서는 ‘한식 뷔페’가 유행처럼 번졌다. 2014년부터 자연별곡, 올반, 계절밥상, 풀잎채 등이 잇따라 지점을 확장하며 수백 곳이 성황을 이뤘다.


그러나 요즘은 이들을 다 합쳐도 10여개에 불과할 만큼 하락세가 뚜렷하다.


올반은 지난해 말 센트럴시티점을 끝으로 모든 매장이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뷔페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진 탓도 있지만, 사실 한식 뷔페 하락세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감지됐다. 여러 메뉴를 다양하게 맛보기보다는 한 가지 메뉴에 특화된 전문점에 대한 소비자 선호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일례로 집에서 흔히 해 먹던 미역국도 이제는 전문 프랜차이즈가 생겨났다. ‘오복 미역’ ‘보돌 미역’ ‘청담 미역’ 등이 수십 개 가맹점을 거느린다. 이들은 가자미 미역국, 전복 가자미 미역국 등 수도권에서는 생소한 메뉴를 개발, ‘프리미엄 미역국’ 시장을 개척했다. 미역국 전문점이 인기를 끌자 현대그린푸드도 미역국 전문 브랜드 ‘돌장각’을 선보이는 등 대기업도 뛰어들었다.


미역국 외에도 김치찌개, 된장찌개, 코다리, 곱창, 막창, 전, 떡갈비 등 단일 메뉴에 특화된 한식 프랜차이즈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한식도 혼밥이 대세


▷‘상다리 부러져라’ 옛말…1인분 특화


‘한식’ 하면 떠오르던 이미지는 ‘정갈함’ 그리고 ‘푸짐함’이었다. 놋그릇에 소복하게 담겨 ‘상다리가 휘어져라’ 가득 나오던 한정식집이 고급 식당으로 선망됐다.


요즘은 달라졌다. 김영란법과 가성비 트렌드가 엎치고 코로나19 사태가 덮치며 인사동을 비롯한 한정식 가게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분위기다.


대신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소박한 1인용 한식이 각광받는다. ‘혼밥대왕’ ‘1인 한식당’ 같은 1인 가구 타깃 한식 프랜차이즈가 각각 151개, 54개로 가맹점을 늘렸다(2020년 정보공개서 기준). 1인분 배달 한식 전문 프랜차이즈 ‘챙길밥’도 지난해 가맹점 100호점을 돌파했다.


‘한식 혼밥’이 최근 주목받는 배경에는 코로나19 사태 영향이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년간 사회적 거리두기로 저녁 술 모임이 제한되며 술을 함께 파는 일반 식당 대신 ‘식사’에만 집중한 박리다매형 식당이 실속을 챙겼다는 것. 한 업계 관계자는 “한식 뷔페도 계절밥상 같은 고급 식당은 문을 닫아도 점심에 7000원만 받는 가성비형 한식 뷔페는 잘되는 곳이 많다. 외식 업계도 양극화되며 거품을 뺀 한식이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조리 간소화


▷3첩 백반 대신 ‘한 그릇’으로 승부


“한식은 아름답고 맛있으며,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여러 가지 식품영양학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 하지만 한식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업체의 경우 인건비, 식자재 원가와 각종 세금의 지속적 상승, 외식 업체의 난립 그리고 치열한 경쟁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 영세한 기업이 많은 한식당의 경우, 타 업종에 비해 경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정진우 영산대 조리예술학부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논문 ‘한식 이미지가 한식 메뉴 선택 속성과 고객 만족에 미치는 영향’에서 내린 진단이다. 밥, 반찬, 국으로 이뤄진 한식은 다른 나라 음식에 비해 손이 많이 가고 식재료비 비중이 높은 반면, 가격대는 낮은 편이다. 외식 업계에서 경제성이 낮은 노동집약적 업종으로 기피됐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젊은 셰프들은 이에 반기를 든다. 한식에 로봇 셰프를 도입한 김용 대표는 “한식은 소비자의 기대치가 높다. 양식, 일식은 유명 셰프가 운영하면 3만원에 팔아도 말이 없다. 반면 잔치국수 같은 한식 메뉴는 특급호텔에서 20년간 근무한 셰프가 만들어도 3만원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제값을 받기 어렵다면 조리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K푸드의 최전선인 미국 LA에서도 젊은 한국계 셰프들이 한식의 세대 교체를 꾀하고 있다. 한인 청년 3명이 시크(세련되고 멋진)하고 건강한 한식을 선보이겠다며 2020년 창업한 ‘한식(HanChic)’은 포장이 용이한 ‘한 그릇(one bowl) 한식’으로 LA에서 맛집으로 자리 잡았다. 메뉴는 역시 현지인을 겨냥한 퓨전 한식. 바오번에 통삼겹살을 넣은 ‘통삼겹 호빵’, 지중해식 부야베스 스튜에 짬뽕으로 오묘한 조화를 이뤄낸 부야베스 짬뽕 등이 대표 메뉴다.


상황이 이렇자 업계에서는 조리 간소화를 위한 조리 로봇 도입에 한창이다.


유가네닭갈비의 볶음밥 자동 조리기 ‘오토웍’이 대표 사례다. 유가네는 2019년부터 2년간 직영점 테스트를 거쳐 현재 31개 매장에 오토웍 48대를 도입했다. 숙련된 직원이 하면 8~9분 걸리는 닭갈비, 볶음밥을 각각 7분, 4분 30초 만에 해낸다. 실제 부산 서면 직영점에서는 직원 한 명이 5개 오토웍을 활용해 80인분의 닭갈비철판볶음밥 단체 주문을 1시간 만에 마쳤다고.


“직원이 유가네닭갈비의 제맛을 내려면 수개월간의 숙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구인난과 최저임금 상승으로 신규 직원 채용이 여의치 않아 점주들의 오토웍 도입 문의가 빗발친다. 그런데 오토웍을 설치하려면 기존 주방 인테리어를 새로 하거나, 테이블 1~2개를 줄여야 된다. 공사 기간이 소요되다 보니 대기 수요에 비해 도입이 늦어지고 있다. 올해는 100개 이상 매장에 설치할 예정이다. 3월 말에는 닭갈비 오토웍도 새로 선보일 계획이다.”


유가네닭갈비 관계자의 설명이다.


[노승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47호 (2022.02.23~2022.03.01일자) 기사입니다]